영산포역

1914년 호남선 개통과 함께 신설된 역으로서, 역명의 유래는 바로 앞에 존재하였던 영산강에 있는 영산포라는 항구에 있었다. 영산포는 비록 내륙항이었지만 서해안의 크고 아름다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목포나 해남 등에서 들어오는 소금배 등이 넘쳐났고, 또한 전라도의 홍어 집결지로 유명하던 곳이었다. 내륙에서 웬 홍어냐고 하겠지만, 홍어가 잡히는 신안군 흑산도에서는 홍어를 생으로 먹지, 굳이 삭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저장방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홍어를 내륙으로 운송하는 동안 상하지 않도록, 삭히는 방법을 택했다. 신안에서부터 목포를 지나, 물 때에 맞춰 조금씩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오다 보면 홍어가 적절히 삭아 있어서, 영산포는 홍어의 집결지로 유명했고, 홍어 냄새가 가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주시 승격 이전 영산포읍은 나주읍과 함께 나주군의 중심지였고, 두 읍이 합쳐져 나주시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1981년 영산강하구둑이 조성된 이후로는 모두 옛 이야기, 실제 영산포항은 이 곳에서 영산강 건너편이고, 영산포의 번화한 지역은 당연히 강 건너편이다. 당연히(…) 배는 없지만, 영산강 등대, 버스정류장 이름 중에 ‘선창’ 등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폐역과 함께 강 안 건넌 이 쪽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산포역은 영산포의 부흥을 상징이라도 하듯, 한때 나주역에 정차하지 않는 새마을호도 정차했었고, 나주역은 물론 송정리역보다 이용객이 많은 역이었다. 나주역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구, 학생의날)의 기원이 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문화재로 묶여 더 이상의 확장이나 개축이 불가능하였던 관계로 일제 시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결국 대구역의 확장 불가로 동대구역이 대구시에서 가장 큰 역이 되었듯, 마찬가지 이유로 영산포역이 나주시에서 가장 큰 역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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